https://youtu.be/mTfegynViUM
키체르 쥬는 시체를 보았다. 처음 토끼를 잡고 뿌연 시야를 헤치던 날로 돌아갔다. 땅은 축축하고 물방울이 볼에 맺히던 새벽. 그 시간을 도려내는 경험을 하고도 여전히 안개 속이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사냥꾼인 걸 알았다. 활시위를 당겨 식사를 얻는 생활처럼 그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필요했다. 상실의 변제, 경애의 증명,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살인이 살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속이 시끄러웠다.
키체르는 고요히 흩날리는 싸락눈을 맞으며 몇 발짝 나아갔다. 시린 빛이 반짝이는 설원에 그림자 같은 발자국을 남기며 몸을 떨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팔뚝으로 닦아 냈다. 그러지 않으면 발끝에 고여 얼어버릴 테다. 자꾸만 비는 머릿속에 생각을 끄집어 넣었다. 걷는 데 목적이 필요했다. 세 사람은 무사히 남하했을까. 이대로 걸으면 카쉬눈닐에 도착할까? 그곳에는 나를 위한 빈자리가 있을까?
…
눈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 녹이는 햇살을 받으며 키체르는 둥지에 누워 있었다. 좁은 공간에 몸을 구기고 안착해 제목이 「잔가지의 시대와 찬탈의 만장가 이후 흰점박이 잡초 서식지 비교」인 보고서를 읽던 중이었다.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훌쩍 사다리를 탔다. 바쁘게 걸어 카란델마야에게로 갔다. 용건은 우편물이었다. 그는 작은 양피지 한 장을 받았다.
“너한테 왔다.”
“고마워.”
토끼이끼를 말리고 압화 해 붙인 엽서였다. 단정히 쓰인 ‘희망을 좇는 허쉬 페일’. 네냐와 서쪽 바다에 잠시 머무른다고 적었다. 추운 북서풍이 불고 부두는 꽁꽁 얼었다고도. 아는 이의 소식이 기꺼웠다. 그것을 카란델마야에게도 보여줬다.
“너도 가서 보고 와.”
“바다를?”
“당연하지! 요즘 네 방에만 있었잖아! 해골이랑 똑같아 지금.”
키체르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을 멍하니 더듬었다. 레녹스 씨가 주는 음식은 깨끗이 먹었는데. 한동안 누워만 있었고. 시킨 대로 둥지도 만들었고. 어제는 사냥도 다녀왔다. 꿩만 두 마리―혹한기에는 드문 숫자였다. 부지런히 지냈는데도 죽상이라는 거군…. 들어가 짐부터 챙기라는 지시에 따랐다. 칸푸르는 못 주니 뛰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떠난 유람은 갑작스럽기도 당연하기도 했다. 수레를 얻어 타거나, 두 다리로 성실히 걸었다. 구운 토끼, 말린 과일, 육포 따위를 꼭꼭 씹어 끼니를 채웠다. 키체르는 산 넘고 물 건너 허쉬와 네냐가 머문다는 바닷가를 찾았다. 여정에는 열흘쯤 소모했다. 두 사람은 해안선과 거리를 두고 육풍이 따스하게 불어오는 돌집에 머문다고 했다. 키체르는 아담한 건물의 쇠고리를 쿵쿵 두드려 방문을 알렸다. 문이 열렸다. 후리후리하고 길쭉한 중년과 그보다는 조금 작고 가벼워 보이는 청년이 고개를 내밀었다. 곧 놀란 목소리로 키체르를 반겼다.
“키체르?”
“찾아올 줄 몰랐어.”
카란델마야가 보냈다는 이실직고와 함께 짐을 내려두었다. 손이 비자 네냐가 쉬고 있었다며 키체르에게도 찻물을 권했다. 그는 사양하지 않았다. 빈자리에 앉아 여러 소식을 주고받았다. 허쉬 씨의 엽서를 받자마자 왔어요. 두 분이 아직 계셔서 다행이에요. 그러게. 조금만 늦었으면 못 만났겠다. 바로 와서 그런가 보다, 잘 왔다, 아는 이들은 각자 길을 골랐다. 정착하기도 하고 방랑자를 못 벗어나기도 했다. 교점 이래를 이야기했다. 너는 어떻게 지내니? 허쉬와 헤어진 다음에. 마을에 돌아갔어요. 제 방이 남아 있더군요. 그들은 해질 때까지 소회를 나누었다. 밤이 멋지다는 네냐의 평가에 세 사람은 단단히 무장하고 오두막을 나섰다.
끼릭끼릭 흔들리는 등불을 앞세우고 해변을 산책했다. 파도가 밀려온 모양 그대로 얼어 있었다. 시간이 멈춘 밤바다에 녹음과 노을을 간직한 장막이 비쳤다. 우기에 덮는 담요처럼 얄따란 비단이 너울거렸다. 겨울이 시작되자 너른땅 북서쪽에서 주로 관찰되는 하늘이었다. 허쉬가 이곳에 막 도착하고 보았으며, 머무른 지 보름째인 오늘 또 나타났다고 설명해주었다. 공상가의 눈으로 언 바다를 바라보면 지평선을 찾는다. 키체르는 그 풍경과 푸른 사막을 겹쳐 보았다. 곁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물꽃이네.”
그 순간 무언가가 천천히 굳어졌다. 햇살 속, 햇볕서리, 눈 속, 소금 섬, 시작겨울, 미정. 단어들을 떠올리고 있자면 햇살에 산란하는 결정이 망막에 맺힌다. 별 또는 찰나의 불티를 닮은 그것. 푸른 사막과 물꽃이 모방하는 하양, 눈이 꽃처럼 핀다는 형용. 키체르는 그 편린들을 한 단어에 담으면서 변절자라는 기원명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안다. 모든 마법을 겪고서야 깨달았다. 토끼, 사슴, 꿩, 곰, 멧돼지, 황소의 오른눈을 화살로 뚫어 가죽을 벗기고 살코기를 베어 무는 일상은 이미 너무나도 깊이 박여 굴레를 끊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수년 동안 흰 반점이 다시 나타나기를 갈망한 지도 모른다. 그렇다. 약제사이기를 바란 거다. 삶이 오롯이 삶이기를 바란 자신과 살해 후 비로소 마주했을 뿐이다.
그래서 안다. 이제껏 분리해왔던 열여덟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영원히 내면에서 소용돌이칠 것이다. 단지 마모된 마음으로 알아 서글프다. 비애와 분노를 언어로 구현할 때 키체르는 사막에 맨발을 담그고 서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면 문득 찾아오는 모래바람이 게헨의 명제를 전한다. 이 나 또한 진리라고. 사막 너머에서 알았다. 고되게도 알았다. 지평선은 세상의 시작과 끝을 나누는 선이 아니었다. 대지를 삶과 잇는 장소였다.
진리는 본래 존재했다. 사람을 죽이는 마법은 부재했다. 사냥꾼도 약제사도 아닌 나로서 끝겨울을 맞이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감각으로 증언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겠지. 상실과 이해를 반복하겠지. 새로운 구속이다. 이어질 생애에 덜 깎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 까마득한 머리 위 땅을 감싸는 빛이 있었다.
“있죠.”
“응.”
“말씀드릴 게 있어요.”
“뭔데?”
“새 기원명을 가지게 되어서요.”
두 개의 시선이 눈동자 하나를 주목했다. 키체르는 기다리는 눈길에 보답했다.
“눈꽃이요.”
네냐와 허쉬는 걸음을 멈추고 낱말을 이리저리 맞추어보더니, 거처로 향하며 한마디씩 해주었다.
“그럼…. 눈꽃 키체르 쥬구나.”
“변절자보다 낫다.”
후한 평가다. 키체르는 애꾸눈을 접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