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오브 차이니즈 SF keyboard_arrow_down

우주 끝 레스토랑/ 우솽 저, 김이삭 역

“자네와 나는 정자에 있고, 정자는 섬에 있지. 섬은 호수 중심에 있고, 서호는 명나라에 있네. 명나라 밖에는 서양이 있고, 명나라 위에는 천궁이 있다네. 만사와 만물은 형식으로는 무수히 변화하지만, 그 본질과 목적은 변하지 않아 결국에는 정도로 돌아가기 마련이지. 잃지도 잊지도 말고 다시 윤회로 들어가는 거야. 장 형, 울고 털어내게.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자, 어서 먹게나.”
이것만 다 기다리면, 새로 저것을 기다리게 된다.
그렇게 계속 기다리는 것이다.

봄이 오는 방식/ 왕눠눠 저, 김이삭 역

이때 구망은 작은 물고기의 두 눈을 보았다. 포도알과 똑같이 생긴 눈을.
구망은 팔천 년 뒤에 이 작은 물고기가 작은 산처럼 커진다는 것을, 그때면 소청도 자신의 사명을 다해 인간 세상으로 환생한다는 것을, 평범한 인간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구망은 팔천 년 뒤에 자신도 물고기가 된다는 것을, 매년 물과 지축을 옮기는 고된 일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구망은 다른 것도 알았다. 영혼이 인간이 되고자 한다면 모두 그런 일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고,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은 무엇일까?
구망은 해당화가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매년 봄을 데려오고 싶었다.
“소청, 우리는 팔천 년을 함께 할 거야….”

화요/ 추시다오 저, 김이삭 역

소훤은 저도 모르게 <강남호>를 떠올렸다. 예언과도 같은 시였다. 매화가 소훤의 정신이라면 둘은 함께 있는 것이니 어쩌면 그림 속에 있는 단홍도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시신을 짊어진 여인/ 츠후이 저, 김이삭 역

“자네는 이 사람을 왜 업었나?”
미친 이는 물었다.
“나도 모르겠습니다.”
여인은 말을 이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 이랬습니다. 등에 아무것도 없으면 길을 어째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이제 어쩌면 좋죠?”
“날 업으면 될지도.”
“미친 이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시체가 되고 싶지 않은걸.”
“맞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더니 자리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길가에 구멍을 파고는 시신을 안에 넣었다. 노란 꽃과 붉은 과일, 신선하고 부드러운 녹색 잎이, 쑥쑥 자라난 생명이 바람을 맞으며 흔들렸다.
태양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구름과 안개는 좁고 기다란 불길처럼 하늘 끝에서부터 차례차례 타올랐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keyboard_arrow_down

프랑수아즈 사강 저, 김남주 역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리틀 라이프 keyboard_arrow_down

한야 야나기하라 저, 권진아 역

그는 사람들이 꿈꾸는 어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래전 있었던 일들을 고집스레 곱씹고 되새길까? 왜 그냥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걸까? 왜 과거에 그렇게 경의를 표해야 할까? 왜 거기서부터 멀어질수록, 기억이 점점 덜해지는 게 아니라 더 생생해질까?
물 만지기 keyboard_arrow_down

김리윤

(전략)

다른 곳을 원한 적 없었다고
난 자리에서 먹고 자고 난 자리를 파헤치고 뒤집고 구덩이를 파고 산을 만들고 약속을 하고 약속을 깨부수고
이곳의 구덩이 속에서, 산 위에서
부서진 약속들 위에 무릎을 꿇고
무릎이 눌어붙도록
난 자리에서 죽도록 기도를
맡아 해왔다고

새집에 가면 신당부터 만드는 친구들
기도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 친구들아

기도는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되었나
기록 바깥에 있는 사람들
영원을 믿으며 영원이 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귀신이 밤새 쫓아다니는 꿈이라면 그걸 악몽이라고 할 수 있겠니?

(후략)
나쁜 숲 keyboard_arrow_down

최지인

(전략)

너는 자면서도 내가 부르면 답한다

우리는 서로의 불행을 파먹는다
내 이름은 첫눈
운명의 시작과 끝
진흙으로 빚은 인형
가마에 들기 전 깨진 조각들
속이 텅 비었지
비 오는 날
뒷길로 돌아가
들판에 내다버렸지
지나간 것
모두

(후략)
언어, 사고, 그리고 실재 keyboard_arrow_down

벤자민 워프 저, 신현정 역

과학은 자신의 시체를 장사 지내고 지위를 포기하며 문화에 속박된 이해에 쇼크로 다가오는 미지의 것들이 끊임없이 검증하는 들판을 향해 나아가거나, 아니면 자신의 과거에 대한 표절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창백한 말 keyboard_arrow_down
보리스 사빈코프 저, 정보라 역
이미 말했다.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이 속에 나의 자유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내게 왜 자유가 필요한가? 무엇의 이름으로 나는 살인을 향해 가는가? 테러의 이름으로, 혁명을 위해서? 피의 이름으로, 피를 위해서……?
사람들은 철학자의 돌을 발견했다느니, 삶의 수수께끼를 풀었다느니, 그런 걸 믿지.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스메르댜코프 같은 짓이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사랑하지 못하고 대신 멀리 있는 사람들만 사랑한다고들 말하지. 주위 사람에 대한 사랑도 없는데 어떻게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나? 진흙 속에 피투성이로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그거 아나,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거, 사람들에게 자기 죽음을 바친다는 건 쉬워. 삶을 바치는 쪽이 더 어렵지. 매일매일, 일 분 일 분을, 사랑으로,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산다는 거 말야. 자기 자신에 대해 잊어버리고, 자기를 위해 혹은 멀리 있는 누군가를 위해 삶을 구축하지 않는 것. 우리는 잔인해지고 짐승처럼 야만스러워졌어.
나는 나의 재판관들도 우습고 그들의 엄중한 판결도 우습다. 누가 나에게 와서 신념을 가지고, 살인해선 안 된다, 살인하지 말라고 말할 것인가? 누가 감히 돌을 던질 것인가? 경계선도 없고 차이점도 없다. 어째서 테러를 위해 죽이는 것은 좋고, 조국을 위해서라면 필요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불가능한가? 누가 내게 대답할 것인가?
 창문으로 밤이 나를 들여다보고, 나는 타오르는 별을 본다. 큰곰자리가 번쩍이고 은빛 은하수가 흐르고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수줍게 빛난다. 그 뒤에 무엇이 있는가……? 바냐는 믿었다. 그는 알았다. 그러나 나는 홀로 서 있고 밤은 이해할 수 없이 침묵을 지키며 대지는 비밀스럽게 숨 쉬고 별들은 수수께끼처럼 아른거린다. 나는 어려운 길을 지나왔다. 어디가 끝인가? 나의 정당한 휴식은 어디 있는가?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심은 복수심으로 살아간다. 나는 그 사람만을 죽인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가며 어디로 피하리이까……?
녹턴 keyboard_arrow_down
가즈오 이시구로 저, 김남주 역

비가 오나 해가 뜨나

"없지! 내겐 빌어먹을 충고 같은 건 없어!" 그는 또다시 악을 쓰고 있었다. "자네가 생각해 내! 자네는 자네 비행기를, 나는 내 비행기를 타는 거지. 어떤 게 추락하는지 두고 보자고!"



이 계획은 실제적인 면에서는 추천할 만했지만, 무엇인가가,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나로 하여금 더 자세하게 검토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도 누군가를 원했다는 거야. 이 다른 나를, 내 안에 갇혀 있는 그 사람을 끌어내 줄 누군가를 말이야……."



"틀림없어. 넌 다른 녹음을 더 좋아해, 안 그래, 레이먼드?"
"음. 사실 잘 모르겠어. 솔직히 말해서 예전에 좋아했던 그 녹음이 어떤 건지 더 이상 기억이 나질 않아." 내가 대답했다.
소파 반대쪽 끝에서 에밀리가 자세를 바꾸는 것이 느껴졌다. "농담이겠지, 레이먼드."
"어이없게 들리겠지. 하지만 난 요즘 이런 음악을 별로 듣지 않아. 사실 이런 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잊어버렸어. 지금 나오는 이 노래가 뭔지도 잘 모르겠는걸." 나는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다지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에밀리의 목소리에 갑자기 짜증기가 어렸다. "정말 어이가 없네. 뇌 수술을 받은 게 아닌 한 그걸 잊을 수는 없어."



에밀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포도주를 조금 더 마셨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게다가 우리는 더 이상 젊지도 않아. 사이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니야. 우리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야 해. 하지만 만족할 줄 몰랐던 것 같아. 이유는 모르겠어. 문득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 보면, 내가 찰리가 아닌 다름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거든."

녹턴

"그중 몇몇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약간의 인정은 받을 만한 자격이 있지요. 당신 같은 사람들의 문제는, 신에게서 특별한 재능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믿는 거예요.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언제나 선두에 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당신만큼 운이 좋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출세를 하기 위해 몹시 힘들게 노력한다는 걸 당신은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건 즉흥적인 충동에서 한 행동이 아니었어요. 당신에게 그 트로피를 주겠다고 결정한 거 말이에요. 난 그것에 대해 열심히 생각했어요. 그게 당신에게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우리의 진짜 작별 인사는 그날 아침 우리의 대탈주 직후 내가 두 팔을 앞으로 뻗어서 그녀의 두뺨에 입맞춤을 했을 때 이미 한 셈이었다.



이제 나는 이 붕대를 풀 날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린디 말이 맞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말처럼 내게는 어떤 전망이 필요하고, 삶은 한 사람만 사랑하기에는 너무 큰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일은 내게 정말로 중요한 전기가 되고 성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린디의 말이 옳을 것이다.

첼리스트

"하지만 당신은 그 악절을 사랑의 '추억'처럼 연주하던데요. 당신은 아직 아주 젊어요. 하지만 감정적으로 버리는 것과 버려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더군요. 바로 그래서 그 곡의 3악장을 그런 식으로 연주한 거예요. 대부분의 첼리스트들은 그 부분을 즐겁게 연주하죠. 하지만 당신의 경우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영영 사라져 버린 한때의 즐거운 시간에 대한 추억이었어요."



"그러니 이제 당신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알겠죠." 하고 말하며 그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신경이 곤두선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난 지금 숨어 있는 거예요. 피터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몰라요. 그에게 좀 잔인한 것 같긴 해요. 지난주 화요일에 전화해서 지금 있는 곳이 이탈리아라고 알려 주기는 했지만 어느 도시인지는 말하지 않았어요. 몹시 화를 내더군요. 무리도 아니죠."
"그러니까 지금 당신은 미래를 응시하면서 이 여름을 보내고 있는 거군요."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 숨어 있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는 부디 태연하게 보이기를 바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늘 해 오던 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당신이 말로 지적하면 제가 연주하지요. 그 방식은 단순한 모방과는 다르니까요. 당신의 말은 내게 창을 열어 줍니다. 당신이 직접 연주를 한다면 창이 열리지 않을 겁니다. 그저 모방할 뿐이지요."



"결혼하실 작정이세요?"
"그럴 것 같아요." 순간 그녀는 티보르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는 이윽고 시선을 돌렸다. "그럴 것 같아요." 그녀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두 분이 행복하시길 빕니다. 그분은 친절한 분이세요. 음악 애호가이기도 하고요. 당신에겐 그게 중요하죠."
"그래요, 그게 중요해요."
댜베 keyboard_arrow_down
댜신 널 볼 수 없을 것 같아
베일 속에 잠든 날 보며
이기적 유전자 keyboard_arrow_down

리처드 도킨스 저, 홍영남·이상임 역

아마 우주의 궁극적인 운명에 목적은 없을 것이지만, 우리 중 누구라도 우리의 삶이 정말로 그 우주의 궁극적인 운명과 같은 운명을 갖는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아니다. 제정신이라면 말이다. 우리의 삶은 보다 더 가깝고, 보다 따뜻한 온갖 인간적 야망과 지각이 지배한다.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따스함을 과학이 빼앗아 간다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잘못이며, 나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느낌과는 완전히 정반대이다. 사람은 절망에 지지도 않은 나를 절망으로 내몰고 있다.